목욕탕

1. 의미

다수의 사람들에게 목욕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시설.

2. 역사

2.1. 서양

문명이 세워지고 다수의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게 되면서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인더스 문명의 중심지인 모헨조다로 유적에서는 대규모의 공중 목욕탕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문명의 초창기부터 목욕탕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고대 로마 때는 커뮤니티 장소로도 애용되었고, 목욕하면서 연극 등을 볼 수 있는 공연 시설이나 도서관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고대 로마의 목욕탕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또한 사치스럽기로 유명하다. 로마 제국에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면서 나신을 드러내는 걸 안 좋게 여기는 인식이 퍼진 데다가, 당시 목욕탕이 매춘의 장소로 쓰이는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위와 같은 사치스러운 형태의 목욕탕은 사라졌다.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중세 시대에 들어서도 유럽에는 공중목욕탕이 존재했고 씻는 것을 그다지 기피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목욕탕이 일종의 공창의 역할을 겸하면서 목욕하러 간다=매춘하러 간다 정도의 인식이 생기게 되었고(오늘날 ‘안마방에 간다’는 말과 비슷한 뉘앙스로) 심지어는 목욕탕이라면서 욕조는 없고 침대만 즐비한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본래 목적인 위생과 청결에 있어서도 점차 멀어졌을뿐더러 목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키우게 되었다. 그리고 중세 후기에 들어 물로 씻는 일반적인 목욕 대신 사우나가 보급되고 증기목욕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목욕은 청결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일종의 사치로 여겨지게 되었다. 결국 중세 말에 들어서 목욕탕은 비위생적인 관리로 전염병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게다가 몸을 씻지 않는 기괴한 풍습이 생겨나며 몰락한다. 이건 전염병의 원인이 비위생적인 관리가 아니라 목욕탕이나 목욕이라고 잘못 짚어버린 탓도 있다. 다만 고대 로마, 중세 시기의 목욕탕은 현대와는 달리 위생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공중 목욕탕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안 씻고 사는게 전염병에는 보다 안전할 수도.

근대에 들어서는 인구는 폭증했는데 사회기반시설은 점차 열악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고대나 중세보다도 사람들이 더 잘 못씻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청결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의 목욕시설을 유지하려면 대량의 깨끗한 물과 그 물을 운반할 수 있는 상수도 시설, 그리고 물을 데울 수 있는 연료가 필요한데 과거에는 사람 수가 적었기에 일단 문제는 되지 않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발전한 기술력으로도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 향수가 널리 쓰이고 발전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터키탕이 검열삭제의 이미지를 덮어쓴 것도 이때.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고대 로마의 유산과 함께 청결을 중시하는 이슬람교의 영향 덕분에 목욕탕이 비교적 온전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터키 목욕탕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터키에 있는 진짜 터키탕(터키어로 Hamam)은 고대 로마 시대의 목욕탕과 유사한 형태를 갖고 있다. 중앙에 ‘괴벡타쉬'(Göbektaşı)라고 불리는 뜨뜻한 둥근 돌이 있고, 그 주변에는 물이 나오는 세면대와 세면도구들이 널려 있다. 이슬람에서는 과거 유목민족 특성상 고여 있는 물을 부정하게 여기기 때문에 욕조가 없다. 세면대도 수도꼭지에서 물이 계속 흘러나와 물이 흘러넘침으로써 물이 고여있지 않게 유지한다. 한국에서처럼 물에 몸을 담그는 대신 증기로 때를 불린다. 괴벡타쉬에 철푸덕 누워있으면 때밀이 아저씨(혹은 아줌마)가 와서 때를 밀어준다.


이것이 원조 터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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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급스러운 것도 있다.

2.2. 한국

한국의 경우 불교가 전래되면서 몸을 청결히 했다는 기록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신라시대의 목욕탕으로 추정되는 터가 발견되어 주목을 끌기도 했으며, 삼국유사에는 683년에 신라의 재상이 동래온천에 입욕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시대에는 역시 불교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몸을 자주 씻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정방이라 하여 실내에 목욕소를 두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절에 목욕시설이 구비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이 자주 다니는 절에서 씻었다. 이런 목욕문화는 불교적인 의미가 강했기 때문에 숭유억불을 거쳐 조선 후기에는 나중에 일본식 목욕탕 문화가 들어올 때까지 양반 외에는 자주 씻지 않게 되었다.

왕실이나 민간에서 왜관이나 국내의 온천지[9]에 온천욕을 다녀오는 일은 자주 있었으며 온양에는 행궁을 설치 했을 정도. 당시 온천욕은 휴식의 의미도 있었지만 대개 의료적인 측면이 컸다. 1671년 정구(鄭逑)가 남긴 봉산욕행록(蓬山浴行錄)을 보면 당시 동래 온양 온천의 온정원(溫井院)을 찾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당시에도 이미 온양 온천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 잡지 못해 수차례 개축하였으며 이는 1766년 부산 온양 온천에 세운 온정개건비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온정개건비 앞에 있는 석조(石槽)는 현존하는 조선 당시의 욕조 유물이다.

참고로 고려시대까지는 옷을 벗고 씻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서 목욕용 옷을 따로 입고 씻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피부에 좋다며 남아를 복숭아 꽃물에 씻긴 기록이나, 쌀겨, 조두 등을 비누처럼 거품내어 사용한 기록이나 수세미로 만든 일종의 목욕용 기구들과 전하는 이름들을 볼때 어느 정도 목욕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대의 찜질방과 비슷한 유형인 한증막이 존재했으며,글과 그림으로 많이 묘사된 탁족이나 신윤복의 단오풍정 등을 볼때 정형화된 욕탕보다는 개울이나 강가 등 노천에서 씻는 행위를 즐긴 경우도 많은 듯 하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목욕탕 문화가 유입되었다. 일본과 가까워 일본인이 많이 정착한 부산의 경우 1909년에 부산 시가지[15]에서 온천이 있는 동래까지 부산전차를 만들어 온천셔틀로 돌리기도 했다. 근대적인 공중 목욕탕 시설도 이 시기에 도입되었는데 1924년 평양에, 1925년 서울에 첫 공중목욕탕이 들어섰다. 당시 사람들은 공중 목욕탕을 두고 “어찌 남에게 맨몸을 보여주나”하고 거부 반응을 보여 정착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에는 대다수가 찜질방과 겸업하고 있다. 찜질방이 없어도 어지간히 작은사이즈가 아닌 이상 이발소가 같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찜질방을 겸하는 업소라도 대개 목욕탕 시설 안에 찜질을 위한 작은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 대다수다. 수영장도 목욕탕과 비슷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대중목욕탕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한국 말고도 일본도 그렇다고 한다. 일본에서 목욕탕을 주로 다니는 이가 쓴 책 <450엔의 행복>에서 거론되었는데, 일본도 갈수록 대중 목욕탕들이 폐업하고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지은이도 일본 목욕탕에 가서 실감했다고. 손님이 정말 없어서 이거 제대로 운영할까? 하던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심지어 외국인이라는 걸 알자 반가워하며 음료를 서비스로 주던 곳도 있는데, 거기 주인은 “갈수록 목욕탕들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씁쓸하게 말하며 “이젠 나도 가게를 오래가지 않아 정리할 예정”이라고 했다고.

외국인들에게는 이국적 풍경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 어느 동남아 남성은 한국의 목욕탕에서 모든 남성들이 다 벗고 있는 모습을 보고 컬쳐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자국의 목욕탕에서는 같은 남탕이라도 팬티만 입고 목욕했다고. 이건 제법 많은 나라들이 그런데 유럽과 아랍, 북아프리카를 다니며 신혼여행을 1년에 걸쳐 다닌 이우일, 선현경 내외도 유럽이나 아랍 목욕탕에서 팬티만 입고 다니는 탓에 이우일은 현지 목욕탕에서 훌러덩 벗고 들어갔다가 다들 어이없게 쳐다봤더라는 일화가 나온다. 1999년 2000 시드니 올림픽 축구 예선전 한국 원정경기를 하러 온 바레인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도 팬티를 입고 목욕했던 일화가 있다. 그리고 한국 내 거주 미국인 한 명이 술 취한 상태에서 목욕탕에 들어갔다 남자들이 다 벗은 걸 보고 게이 사우나로 착각해[17] 남중생을 성추행하다 불구속입건을 당한 적이 있다. 참고로 목욕탕에서 일본은 수건을 두르는 편이고[18] 중국은 두르지 않는 추세고 터키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팬티나 바지를 입고 들어간다. 일본 위키피디아의 한국 ‘찜질방’ 항목에서는 한국의 목욕 문화를 같이 설명하며 타월로 가리지 않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수 있다고 작성되어 있다.

2.3. 미국/영국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Bath House나 Public Bath라고 쓰여진 큰 건물이 있었다. 미국의 경우, 정말로 목욕시설이 부족했던 서부시대가 아닌 이상(갑자기 마을이 생성되던 서부시대에는 대부분 독립적인 건물에 유료 목욕시설이 있었다. 여행자들이나 행인들을 위한 사설 업장이었다), 대부분 수영장이나 기타 시설을 겸하고 있었다. 현재의 스파의 모태가 된 시설인 셈.

영국은 생각보다 대중 목욕탕이 발달했는데, 그 이유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 가정은 대부분 한 건물에 여러가구가 북적북적 모여 사는 시스템이었고, 당시에는 수도 펌프고 뭐고 제대로 된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에 제대로 씻을 곳이 없었다!!!  있다 해도 한 건물에 한두 개의 수도시설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안 되면 우물에서 길어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애초부터 사람이 사는 집 안에 욕실이 없는 구조였던 것.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일부 상류층을 제외하면 대부분 제대로 못 씻어서 때가 꼬질꼬질한 사람들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

이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19세기 초엽부터 바닷물로 씻을 수 있는 대중탕이 리버풀의 부둣가에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부둣가의 선원을 위한 시설에 불과했고, 현대적인 의미의 대중목욕탕은 키티 윌킨슨(Kitty Wilkinson)이라는 아일랜드계 이민자 여성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리버풀에는 콜레라가 창궐했는데, 키티 윌킨슨은 대인배스럽게 자신의 집과 마당을 빨래 공간으로 제공한 것. 또한 키티 윌킨슨은 이웃들에게 표백제를 사용해서 빨래를 세탁하는 법도 가르쳤고,  게다가 자신의 보일러로 빨래를 살균 세탁까지 했다!  이러한 상황에 리버풀 시 당국은 청결함이 질병 창궐을 예방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여러사람들의 지원을 얻고 키티 윌킨슨의 건의에 따라 영국 최초의 대중 목욕탕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질병의 위험에서 해방되었고, 가난한 자들이나 노동계급도 얼마든지 더운물로 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대중목욕탕은 영국 여기저기로 퍼져나가게 된다. 하지만 일본이나 고대 로마, 터키의 목욕탕과는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도 개인 목욕공간이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경우에 따라서 가슴 높이나 머리까지 올라오는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고, 그 안에 욕조가 놓여있는 구조였다.[21] 대충 이런 식이었다. 일본식 목욕탕처럼 커다란 탕에 여러명이 함께 있는 구조는 아니었던 것.[22] 재미있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키티 윌킨슨의 노력에서 기인한 문화여서 그런지, 목욕탕 뿐만 아니라 뜨거운물이 펑펑 나오고 스팀으로 살균소독까지 할 수 있는 빨래방(Wash House. 당연한 이야기지만 요즘처럼 세탁기가 있는게 아니라 그야말로 “빨래터”)도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목욕탕과 빨래방이 한데 붙어있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런 식의 대중목욕탕은 현대적 샤워시설의 확산과 스파의 확산으로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20세기 중후반까지는 꽤 남아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사우나나 스파가 영국식 대중목욕탕 전형이 되었다. 하긴 이제 집집마다 생활 여건이 많이 좋아져서 목욕탕이나 샤워시설이 없는 집은 드문지라…

여담으로 영국에서 사우나에 갈때는 잘 확인하고 가자. 가끔 게이 사우나가 존재한다. 영국에서도 특히 런던은 성소수자를 위한 배려가 잘 되어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게이 사우나가 성업중이다. 물론 그렇다고 게이 사우나에 들어가는 순간 비누 좀 주워줘 시츄에이션이 펑펑 터지는 것은 아니니, 본인이 굳이 게이가 아니라고 해도 흥미가 동한다면 상관없다. 애초에 거긴 다들 몸 씻으려고 오는 곳이지 그렇고 그런 거 하려고 오는 성인 업소가 아니다. 당연히 거기서도 상대 동의 없이 누군가를 덮치면 성범죄로 잡혀들어간다.

3. 현대의 목욕탕

3.1. 규모와 구조

보통의 동네 목욕탕부터 대형 스파시설까지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가격은 싸고 작은 동네 목욕탕의 경우 4~5천원 수준부터, 유명 대형 스파의 경우 1~2만원 수준 정도까지 다양하다. 그 탓에 작은 규모의 동네 목욕탕은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현재 대부분의 목욕탕이 부지를 확보하여 겸업을 하기 때문에, 목욕탕과 찜질방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져가는 상태. 더군다나,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웬만한 집은 제대로 된 목욕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그냥 목욕시설만 있는 ‘대중탕’은 이미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70년대엔 씻을만한 시설이 진짜로 목욕탕밖에 없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때문에 동네 목욕탕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크고 사람도 너무 많아서 정신없는 대형 찜질방보다는 오히려 조용하고 호젓한 동네 탕이 느긋하게 목욕을 즐기기에는 좋기 때문. 특히 막 목욕을 끝내고 나와서 조용한 탈의실에 앉아 삶은 계란에 차가운 사이다나 얼린 야쿠르트를 먹는 기분은 대형스파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나체로 들어가야 되는 것 때문에 당연히 남녀의 구분이 존재하며, 남탕과 여탕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규정에는 만 5세 이하 , 신장 100cm 이하라고 명시가 되어 있으나, 그냥 아주 어려 보이는 어린이의 경우 성별에 상관 없이 남탕이나 여탕에 모두 입장할 수 있다. 물론 혼자는 불가능하고, 부모를 동반해야 하지만.

자리(좌석?)는 샤워기의 배치 형태에 따라 나뉘는데, 입식, 좌식 두 종류가 있다. 입식은 정면의 어른 키 정도의 높이에 거울과 샤워기가 배치되어 있어 말 그대로 서서 씻을 때 이용하는 자리이고, 좌식은 앉은뱅이 책상 정도의 높이에 수도꼭지와 손에 잡고 다룰 수 있는 샤워기가 배치된 형태로, 앉아서 주로 때를 미는 용도로 이용한다.

스스로 때밀기가 귀찮거나 좀더 완벽한 때밀기를 위해 목욕탕마다 배치되어 있는 때밀이 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가격 역시 만만치 않으니 정말 귀찮지 않은 이상 때는 스스로 밀자. 이따금 서로 모르는 사람이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훈훈한 광경을 볼 수 있다.

현대의 목욕탕에 몸을 담그는 장소(탕)로는 대개 온탕(대개 38~42℃) 과 냉탕(15~20℃), 열탕(43~45℃)이 있으며, 뭔가 알 수 없는 성분을 풀어놓는 특수목적 탕이 있고 이벤트탕이라고 부르며, 요일이나 날짜별로 날마다 다른 성분을 풀어놓는 곳도 종종 있다. 온탕의 레벨업판이라고 할수 있는 열탕은 사실 온탕보다 끽해봐야 2~4℃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남에도 불구하고 온탕과의 괴리가 상당하다.(매우 뜨겁다) 열탕에 들어가서 조금 있다가 곧바로 온탕에 입수하면 온탕물이 상대적으로 미지근한 걸 넘어 시원하게까지 느껴질 정도. 젊은 층들의 경우 열탕을 선호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열탕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부록으로 냉탕의 최종진화판인 얼음탕도 있다. 어떤 곳은 얼음탕이 아니라 급냉탕이나 북극(…)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이쪽은 얼음탕에 들어갔다가 냉탕에 입수했을 시 미지근하게 느껴진다. 다만 열탕은 뜨거운 물과 찬물만 적절히 섞으면 준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얼음탕은 따로 얼음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인지 흔하게 찾아보기 어려운 편.그외에도 족욕탕이나 히노끼탕등이 있기도 하다.상암 월드컵 경기장내 목욕탕인 스파랜드에서 이 모든 탕을 찾아볼수있다. 냉탕은 타 목욕탕에비해 규모가크고 급냉탕은 깊은편. 급냉탕역시 열탕처럼 나이드신분이 많이애용한다.

흔히들 남자가 투명인간이 되면 하고 싶은 것 순위 안에 꼭 들어가는 것이 여탕가기.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가는 사람도 있지만 자라면 기억이 흐릿해진다. 물론 가봤자 허망한 망상마냥 몸매좋고 예쁜 여성들이 호호호 후후후 거리면서 줄지어 목욕하는 일따윈 없고, 대부분이 아줌마에서 할머니들 뿐이지만.

3.2. 구비품

참고로 일반적인 목욕탕은 남탕과 여탕의 구비품이 다르다. 남탕의 경우 안에 수건이고 비누 및 치약 그리고 때밀이수건 부터 스킨로션 까지도 전부 구비되어있어 , 필요한 칫솔, 면도기, 때수건(이테리타올), 샴푸,바디워시 정도만 따로 가져가거나 입구에서 구입해서 들어가거나, 그냥 돈만 챙겨들고 빈손으로 들어가도 괜찮다. 어차피 매점에서도 파니까. 여담이지만 동래 및 현 연제구(구 동래구 관할 지역이 일부 있음)에는 남탕에도 위의 설명과 달리 수건부터 비누까지 다 가져가야 하는 목욕탕이 일부 있고 일부 목욕탕에서는 샤워타올을 비치 안해두는 곳이 일부 있다.

여탕의 경우 심한 곳은 샤워기, 탕, 물을 제외하고는 수건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곳도 있는가 하면 비누나 바디워시, 샴푸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스킨, 로션은 웬만한 곳은 구비되어있다. 그러나 여성들은 자기 피부타입, 머릿결 및 개인 취향에 맞는 목욕용품을 챙겨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쨌든 짐은 많아진다. 여탕보고서 13화 및 14화를 참조하자.

또한 대부분의 여탕의 경우 드라이기, 휴지, 비누, 등… 이 비취되어 있더라도 대부분 시건장치로 고정되어 있다. 참고로 가장 빈번하게 도난당하는 물품중 하나는 면봉..(한뭉텅이로 집어간다)

참고로 대부분 남탕의 수건 회수 비율은 100퍼센트가 넘는다 그이유는 아래에서 후술, 반대로 100퍼센트가 안되는 경우는 대부분 찜질방을 같이 경영하는 목욕탕

4. 성별에 따른 구분

누구든지 목욕을 하려면 몸을 씻기위해 벗어야 하며 자신의 알몸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매우 큰 실례다. 물론 개인별로 나누기에는 목욕탕을 세우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에 모든 목욕탕은 성별을 기준으로 구역을 나눈다.

여탕의 경우 일부 어머니들이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아들도 막무가내로 데려오는 바람에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생각해보자. 7~11살 먹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을 목욕탕에 데리고 갔더니, 거기서 딸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아이가 있다면? 딸을 포함한 딸의 모친도 어마어마한 수치심을 느낄게 분명하고, 심하면 그 수치심으로 인해 딸은 영구적인 트라우마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자신의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온 여자애가 갑자기 주저 앉아 눈물을 터뜨렸는데, 알고 보니 목욕탕 안에서 마주친 남자애가 같은 반에 다니는 남자애였다고. 이에 대해 여자아이 모친측에서는 당연히 강하게 항의를 했는데, 정작 그 남자아이의 모친이란 사람은, “애가 아직 순수해서 성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괜찮다.”였다. 실제로 목욕탕에 모친을 따라 다녀온 몇몇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남자애들은 반에서 자신들의 목욕탕 경험담을 같은 반 남자애들을 대상으로 들려주고는 한다.

그리고 더 심한 경우 남자아이가 여성을 만지는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으며 인터넷에 찾아보면 수두룩하게 나오는 사례다. 아이가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일단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그 남자아이를 데려오고 맘대로 돌아다니도록 놔둔 엄마에게 책임이 있는데도, 위에서처럼 애가 뭘 알겠느냐는 식으로 발뺌하거나, 심지어 대상 여성이 나이가 어린 경우 “나이도 어린게 어디 우리 애한테 훈계질이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정말 답이 없다. 혹시라도 이런 일을 당하거나 목격한다면 당사자는 물론 그 아이를 들여보낸 목욕탕 주인과 직원들에게도 반드시 항의를 해서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그런 아이들의 출입을 막을 책임은 1차적으로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여탕 출입 가능 남아의 나이 규정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2003년경 원래 만 7세였던 기준이 만 5세로 낮아졌지만[28] 아이들의 성장이 점점 빨라지면서 이를 만 4세로 더 낮춰야 한다는 건의가 계속 나오고 있다. 얼핏 보면 대부분의 여성들이 찬성할 의견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가정 환경(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등)이나 연령대에 따라 의견이 제각각이며 반대의 소리도 만만치 않다. 문제가 되는 연령대가 여탕에 데려가긴 너무 크지만 혼자 집에 두거나 목욕을 보내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지라… 하지만 이것도 변명이 될 수가 없는게, 아이가 정작 “애매한 나이”라면 자신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목욕을 하면 그만인거다. 꼭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해야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남탕의 경우 아버지가 데려오는 딸도 가끔 있는데, 이것 때문에 주변 남성들이 심하게 불쾌해하거나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는듯 하다. 오히려 부모들이 어린 딸을 남탕에 들여보내는 것을 꺼려하는 편. 실제로 일부 남탕 손님들의 자기 딸을 향하는 시선에 불쾌함을 느꼈다는 경험담을 가끔 들을 수 있고 심지어 다른 목욕객이 여자어린이를 보고 서는 것을 목격했다는 사례도. 이 때문에 남자 아이가 여탕에 들어가는 것에 비해서는 사례 자체가 많지 않다. 그래도 90년대 이전의 과거에는 딸을 데리고 오는 아버지들이 자주 보였지만 아동 성범죄에 대한 경계심이 극도로 강해진 2010년대 이후에는 여아를 남탕에 들여보내는 것은 거의 금기시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일본의 한 목욕탕에서는 외견 연령 9살은 넘었을듯한 여자애가 아빠를 따라 남탕에 출몰해서는 수건으로 몸을 가리지도 않은 채로 (일본의 목욕탕에서는 아무리 동성끼리 같이 있더라도 나체 상태일 때 그 부분은 수건으로 가리는 것이 예의이다) 남탕 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데 정작 남성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사례가 있다. 심지어 분명히 가족이 같이 왔는데 엄마는 혼자 여탕에 가고 어린 딸이 아빠를 따라 남탕에 들어오기도 한다. 분명한 실제 사례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경악할 일이지만, 정작 일본의 남탕에서는 어린 여자애들이 들어와도 사람들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적어놓으니 이성의 출입이 매우 흔한 일 같지만 사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흔한 일은 아니며, 이렇게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경우 아빠들은 딸이 혼자 떨어지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의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문화에서 나왔다고도 볼 수 있다.

한쪽 성별의 목욕탕에 무단 침입을 하는 경우가 있다보니 외모가 남성적인 여성이나 외모가 여성적인 남성의 경우 주민등록증 등의 신분증을 통해 성별을 인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별 정정을 못한 트랜스젠더의 경우에 성별을 인증할 신분증이 없어 어려움을 먹는 경우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성별 정정을 했더라도 외부 성기 수술을 하지 않았거나 각종 수술의 흉터가 크게 남아있는 경우 굉장한 컴플렉스가 된다. 이 때문에 트랜스젠더들은 아예 목욕탕 이용을 포기하거나 정 씻어야겠다면 모텔을 대실(목욕탕 요금보다 몇 배는 비싸다)하여 씻는 경우가 많다. 흔히 성기 수술을 못한 트랜스여성들이 가장 크게 고생한다고(혐오자들에게는 같이 씻기 불쾌하다고) 여겨지지만, 트랜스남성들도 성기만은 어떻게 가린다 쳐도 넓은 골반의 흔적, 가슴에 남은 큰 흉터 등의 수많은 요인이 있으므로 그다지 목욕탕을 좋아하진 않는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들 사이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쌩까고 유유히 씻고 왔다는 무용담도 나오기는 하지만 굉장히 드물고 쉽지 않은 일이기에 괜히 ‘무용담’이라 하는게 아니다.

5. 문제점

5.1. 성관련 범죄의 온상

성추행과 성폭행 사고가 찜질방과 함께 꾸준히 일어난다. 또한 목욕탕에 밀실을 갖추어놓고 스포츠마사지니 뭐니 하는 핑계를 댄 다음에 불법 성매매 혹은 유사 성매매를 알선하는 목욕탕 업주들이 검거된 사례가 있다.

5.2. 절도의 온상

말그대로 절도의 온상. 모두가 옷을 벗고 있는 특성상 cctv를 설치할 수도 없으므로 누가 훔쳐갔는지 현장검거하지 않으면 모르게 된다.

5.2.1. 손님 입장

핸드폰, 지갑, 가방 등을 주로 터는 도둑들이 출몰해서 항상 자신의 물품을 사물함에 넣고 열쇠를 지켜야 한다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한다, 한편 개인이 가져온 고급 목욕용품을 목욕탕 주인이 몰래 훔쳐가는 경우도 있다.

5.2.2. 목욕탕 입장

5.2.2.1. 목욕 물품 도난

남자들이 그냥 돈 내고 목욕만 하고 나오는 반면에 여자, 특히 아줌마들은 들어가서 수건이랑 비누, 비누 담는 플라스틱 케이스까지 슬쩍하는 경우가 있어 목욕탕 주인의 손해가 심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2000년대까지 남탕엔 있을 거 다 있으면서 여성들만 자기 목욕할거 다 챙겨오라는 처사가 불공평하다고 느낀 여성단체가 목욕탕연합회에게 이의를 제기해서 결국 시범적으로 지정된 지역의 목욕탕에서 기간 한정으로 여탕에 수건과 비누를 비치하고 통계를 낸 적이 있었는데, 여탕의 수건 회수율은 겨우 30%라는 결과가 나왔다.

2006년 불만제로 프로그램에서 조사한 바로는 남탕은 95%, 여탕 80%의 회수율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탕엔 비누랑 수건이 없거나, 혹은 입구에서 2개 정도의 수건을 나눠주고 나올 때 돌려받는 곳도 있었다. 찜질방과 겸업하는 경우는 어차피 남탕손님과 여탕손님이 섞여서인지 구분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남탕에는 웬만한게 다 있다는 말을 들으면 여자들이 오히려 놀랄 정도. 반대로 남자들은 여탕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그 이유가 여탕의 수건이나 비누가 자꾸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니, 도대체 그걸 왜 가져가?”라며 이해 자체를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심지어 이 대여용 수건에 도난방지장치를 해놓아서 그냥 가지고 나갈 때 경고음이 나오도록 시설을 설치해 놓은 곳도 있는데, 그런 곳에서는 꼭 하루에도 몇 번씩 경고음을 듣게 된다고 한다. 일부 목욕탕에선 수건에 목욕탕 이름 대신에 목욕탕에서 훔친 수건이라고 프린트해 놓은 곳도 있다. 동네 주민인지 누가 컬투쇼에 이걸 사연으로 보냈는데, 컬투는 공중파에서 대놓고 “이런 치사한 목욕탕은 망해 없어져야 한다. 수건 몇 장 훔쳐가면 어때서.”라고 말하며 절도범을 편들었다.[31] 아무리 소액이라도 절도는 절도고, 목욕탕에서 수건을 단순히 몇 장 잃어버리는게 아니라는건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참고로 위의 이미지에 “왜 수건을 2장만 주나”라고 적혀 있는 것은 목욕탕 수건 도난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찜질방에서 남성들에게는 수건을 무한대로 제공하면서 여성들에게는 2장으로 한정하는 것에 대해 여성들의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얼핏 보면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성들에게 수건을 무한으로 제공할 경우 1인당 무려 10장 이상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한을 두었다고 한다. 대충 따져봐서 들어갈때 몸 가린다고 1장 쓰고, 머리 감을 때 머리 묶는다고 또 1장 쓰고, 사우나 들어갈 때 2장 쓰고, 씻을 때 허벅지에 걸쳐두려고 1장 쓰고, 몸 닦을 때 1장 쓰고, 머리 말린다고 1장을 쓰는 등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 정도다. 반면 남자는 모든 게 한 장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고, 많이 써도  서너장 정도다.

5.2.2.2. 무단 빨래

사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수도요금 아끼려고 목욕탕 가서 빨래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이 쪽은 남자들도 자주 있었는지, 21세기 초반까지 남탕에서도 웬만한 사우나에선 빨래 물건을 들고 오지 말라는 말은 다 볼 수 있었다. 이건 군대에서의 습관과도 관련이 있을 듯. 대개 이쪽은 숙박비를 아끼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빠는 경우가 많지만. 심지어 일본 관광지의 온천에도 한국어로 ‘세탁하지 마십시오’라고 써붙어있는 곳들이 있다. 한인들이 많이 찾는 영미권 수영장 샤워실에서 빨래하는 아줌마들 때문에, 한국어로 경고가 써있는 곳도 종종 있다.

6. 트리비아

자리맡기 이외에도 여탕에서는 커피나 각종 차를 큰 물통에 얼음 가득 넣은 뒤 탕 안에 가지고 들어가서 마시는 풍습도 있다. 여탕보고서에서 이 사실이 공개되었을 때 댓글에서는 독자들의 컬쳐쇼크가 교차했다. 남성의 반응은 ‘여탕에는 커피도 파냐? 충격!’이었고, 여성의 반응은 ‘헐, 남탕에는 커피 안 파나? 충격!’이었다.

무좀의 대표적인 온상 중 한 곳이다. 따뜻하며 공기가 매우 습한 곳인데다 여러 사람이 맨발로 함께 다니는 곳이어서  발 관련 질환을 예방/치료하려면 가장 유념해야 할 곳이다. 바닥을 밟은 사람들 중 일부가 무좀균 보유자의 탈락한 발의 각질을 통해 옮을 수 있고 특히 여러사람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체중계나 욕탕 입구에 놓여진 발 깔개, 화장실의 슬리퍼 등이 가장 위험한 장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무좀에 걸리는 건 절대 아니다. 사람마다 몸 상태에 따라 당연히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 목욕 후 발을 완벽히 건조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예방 방법.

경상도 지방에는 자동 등밀이 기계가 있는데 예전에 스펀지에서도 나왔었다. 원래는 등을 미는 용도지만 스킬이 늘수록 모든 신체부위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게 기계가 몸에 맞춰서 강약 조절을 하는게 아니라 몸을 기계에 맞춰 강약 조절을 해야 해서 숙달되지않으면 며칠동안 따갑다. 요새는 서울에도 많이 있다.

외국에도 대중목욕탕이 존재한다. 칸막이로 나뉘어서 욕조가 하나씩 배당되는 시스템인 곳도 있고, 한국처럼 커다란 탕이 있는곳도 있다. 하지만 정문에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으면 게이 사우나다.

란마 1/2에서도 란마가 핫포사이와 함께 대중탕에 가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당연히 핫포사이 영감은 주목적이 여탕 훔쳐보기였는지라. 이를 말리려는 란마와 한바탕 전쟁을 치뤘고, 결국 그 날 그 목욕탕은 그 여파로 폐허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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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파이터 2에선 에드몬드 혼다의 전용 스테이지가 목욕탕인데, 혼다가 목욕탕 주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목욕탕 스테이지와 그의 필살기 백열장수 때문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혼다가 때밀이로 인식되는 편.

원반황녀 왈큐레의 주인공 토키노 카즈토가 목욕탕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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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르마이 로마이

7. 문서가 있는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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