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현대 욕실문화와 디자인

우리가 흔히 화장실 혹은 욕실이라고 부르는 ‘새니터리(Sanitary)’ 공간은 세면 공간, 욕실 공간, 변기 공간을 합친 개념이다. 그 구성은 생활 문화의 차이에 따라 각 나라 별로 가지각색이다. 구성은 크게 일체형과 분리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유럽, 미국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는 일체형이 많다. 하나의 공간에 세면대, 욕조, 변기가 배치되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한 가지 기능만을 일컫는 화장실 혹은 욕실이라는 용어로 이 세가지 기능을 다 포함하는 공간을 지칭하는 것이다. 물론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화장실이 바깥에 따로 위치하기도 했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현재 우리와 같은 일체형과 함께 분리형도 존재하는데, 세면대와 욕실, 변기가 각각 다른 공간에 배치되어 있는 분리형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림 1. 토토의 비데 겸용 변기 워시렛이 설치되어 있는 화장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변기 위주인 ‘화장실’ 공간은 일본의 발명품인 워시렛(Washlet)이 대부분의 가정에 설치되어 있고 현관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일본의 화장실 바닥은 우리처럼 방수 효과가 있는 타일 바닥이 아니라 다른 방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마감으로, 변기 기능에 의해 나오는 물 외에는 물기나 습기가 그다지 없는 편이다. 그냥 다른 방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맨발이거나 양말을 신고도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항상 물에 젖어 있는 우리의 타일 바닥이나 변기 주변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또한 이 바닥재 때문에 많은 일본 남성들은 앉아서 일을 본다. 변기와, 경우에 따라 손 씻을 작은 세면대 정도로 구성된 2평방미터 정도 규모로 공간은 그리 크지 않다. 우리 식의 화장실 크기에 익숙해져 있으면 처음에는 일본식 화장실이 폐쇄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림2. 이낙스의 사티스

일본의 변기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외국과 가장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것이 바로 변기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 특히 유럽은 변기와 비데가 따로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 것에 반해, 일본은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변기와 비데 기능을 하나로 모은 새로운 형식의 변기를 사용하고 있다. 바로 토토(TOTO)가 첫 선을 보인 워시렛(Washlet) 이라는 이름의 변기 장착용 비데다. 토토의 워시렛은 일본 국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일본의 이런 유행에 맞춰 우리나라에서도 외견상 조금 불안함이 있긴 하지만 기존 변기에 추가로 비데를 붙어 사용하는 가정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직접 토토의 제품을 수입해 쓰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런 비데 겸용 변기도 이낙스(INAX)의 사티스(SATIS)의 출현으로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티스는 변기에 추가 설치하는 방식이 아닌 디자인성이 뛰어난 일체형 비데 겸용 변기다. 사티스를 통해 센서로 사람이 들어가면 덮개가 저절로 열리는가 하면 공중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흘러나오는 에티켓 기능 등이 일반화되면서 그동안 가장 외면 받았던 라이프스타일 공간 중 하나인 화장실이 거듭 진화하고 있다. 워시렛 기능에 탄복한 유럽 회사에서는 한 때 비데 겸용 변기 제품을 도입해 설치해 보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 이어온 화장실 문화의 벽을 깰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토토에서 유럽 현지 법인 유로 토토(EURO TOTO)를 설립하여 형태나 기능을 유럽 스타일에 맞춘 새로운 워시렛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열린 밀라노 살로네 2009에서는 이 신제품을 발표해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림 3, 4. 토토의 일체형 유니트 바스.

다음은 ‘욕실’ 공간을 살펴보자. 건축 구조물 공간에 세면대와 욕조, 변기가 나란히 붙어있는 우리나라의 욕실과는 달리 일본의 욕실은 ‘유니트 바스(Unit Bath)’라는 이름으로 천장과 바닥, 벽이 말 그대로 박스 형태의 규격화된 유니트로 대량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방수 기능이 뛰어나고 건축 공기(工期)를 절약할 수 있어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다. 유니트 바스는 토토를 비롯해 이낙스 등 일본 대부분의 욕실 관련 브랜드에서 생산하고 있다. 일반 가정의 유니트 바스의 구성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욕조와 함께 ‘아라이바(洗い場)’라고 하는 몸을 씻는 공간이 있다. 아라이바는 우리나라 공중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욕탕 밖에 앉아서 씻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전부터 습기가 많고 온천이 발달된 나라여서 그런지 매일 저녁 욕조에 몸을 담그는 일이 일본인의 일상적인 일과의 하나라고 할 수 있어서, 욕조는 거의 매일 가족 모두가 사용하는 중요한 일상품에 해당한다. 손윗사람, 즉 할아버지나 아버지부터 나이순으로 차례대로 목욕하는데, 한번 욕조에 물을 받아 놓으면 사용할 때마다 물을 빼고 새로 받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전부 다 사용하고 난 후에야 물을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욕조에는 식은 물을 다시 데울 수 있거나 일정 온도로 유지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게 특징이다. 또 유니트 바스의 바깥 쪽에 설치된 리모컨에서 수온과 수위 등을 설정해두면 자동으로 물을 받을 수 있다. 욕조가 만수가 되면 소리로 알려주기도 하고, 수온은 설정된 온도로 계속 유지되면서 필터를 통해 물이 자동 정화되는 기능도 있다. 요즘은 미스트 사우나(Mist Sauna), 제트 버블(Jet bubble) 등의 기능도 옵션으로 추가 주문이 가능하다. 유니트 바스의 천장에는 욕실 건조 기능이 있고 바닥은 미끄럼 방지를 위한 특수 소재를 사용하면서 최근에는 독특한 표면 패턴을 이용해 빨리 배수되는 신기술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유니트 바스는 설치와 설비 보수 및 유지, 해체와 재설치 등이 비교적 간단하다.


그림5. 이탈리아 새니터리 브랜드 아가페 디자인의 통합형 바스룸.

새니터리를 구성하는 마지막 요소로는 ‘세면’ 공간이 있다. 세면대는 대개 일체형의 유니트 바스의 입구 근처에 위치한다. 이 공간은 욕실에 들어가기 전의 탈의장 기능도 겸하고 있어 세탁기를 함께 배치하는 경우도 많다. 세면대에서는 간단하게 세면, 양치를 할 수 있다. 세면대가 놓여 있는 바닥은 앞서 이야기한 변기가 있는 화장실의 바닥과 대체로 동일하다.

화장실, 욕실, 세면대의 공간을 각각 따로 두는 일본의 이같은 구성은 그 쓰임새에 따라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사용할 수 있으므로 가족 구성원이 많을수록 이롭다고 할 수 있다. 서구식 욕실 문화를 받아들인 우리나라처럼 모든 것이 한 장소에 위치한 스타일이 익숙하다면 따로 따로 떨어진 공간 구성이 불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이 분리 시스템에 적응하게 되면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시스템의 기능성이나 편리성에 매료되어 선호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반면 최근에 서구의 외국 생활을 경험한 일본인이나 외국인 거주자를 중심으로 화장실, 욕실, 세면대가 한곳에 구성되어 있는 통합형 스타일의 선호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그와 관련한 시장이 일본의 새니터리 시장의 10% 정도의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데 지금도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런 분위기와 함께 아가페(agape)보피(Boffi) 등 외국 브랜드들의 진출도 눈에 띈다. 통합형 새니터리 공간 구성에 강점을 가진 이런 브랜드에서는 우선 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호텔이나 별장, 리조트 등을 중심으로 그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새니터리가 차지하는 공간의 크기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데, 집에서 10평방미터 이상을 새니터리에 할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거실과 침실, 주방과 더불어 새니터리가 일본의 주거 공간에서 점점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국내 시장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토토 역시 이전의 기능 중심의 분리형에서 디자인을 중시하는 통합형의 라인을 발표하면서 일본 새니터리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림 6. 이번 밀라노 살로네에서 선보여 주목을 받은 토토의 새로운 통합형 바스룸 네오레슬(Neorestle).

또한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대단한 붐은 아니지만 일본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새니터리 공간을 고집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이 개성적인 공간에 디자인성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아파트 중심의 우리나라와는 달리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단독 주택에서의 삶을 동경하고, 실제로 그런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들이 많은 일본이기에 새니터리라는 공간에 대한 이런 관심이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집안을 꾸미자 치면 대체적으로 가족 이외에도 손님에게 개방할 수 있는 거실을 시작으로 침실, 주방에 이어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새니터리의 순으로 투자와 관심이 옮겨가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거실 꾸미기에 인테리어 예산을 집중하는 편이고, 문화적이거나 관습적인 요인으로 인해 새니터리 공간에까지 흥미와 애정을 갖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때 유행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개성과 삶을 중시하는 세대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니,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나라에서도 개성있고 훌륭한 디자인의 욕실 공간을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